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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상/도쿄생활

2020년. 오랜만의 일기. 도쿄사람 다 됐네.

by Kyolee. 202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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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도쿄 프랜차이즈 카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백발의 노인이 대부분이다. 출근 시간에 쫒기는 나와 같은 회사원들은 자연스럽게 테이크아웃의 대행에 합류하여 자신의 주문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린다. 손에 꼭 붙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누군가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지나갈 때면 열린 코트 자락이 행여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연신 옷매무새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은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의자에 앉아 아침 카페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악보 노트에 음표를 쓱쓱 그리는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연노란색 머플러를 두르고 무언가의 공부에 심취한 아저씨, 아침 9시 50분부터 혼자 팬케잌을 자르는 할머니. 그러고보니 어제 퇴근길에 전철 옆 자리의 할머니가 스페인어 구몬 학습지의 빈 칸을 열심히 메우고 있었다. 출근길에 책을 읽는 것도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시작한 나로서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상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노인들의, 젊은 사람들과 딱히 다를 바 없이 무언가를 배우거나 즐기는 것에 열중하는 모습들이 아직도 나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올해부터 정년을 70세로 연장했고,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은 그런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한편, 여태껏 한국에서 봐온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이질감과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남의 나라의 아픔을 짓밟고 성장할 수 있었던 호화로운 시기를 겪은 세대들이 오늘날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계속하고, 커피와 음악을 즐기고, 여행과 문화생활을 누리는 모습이,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값이 비싸다고 하는, 그 흔한 뉴욕 치즈 케이크가 어떤 맛인지도 모를 우리 할머니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어서 말이다.

 

그 상반된 모습을 떠올림과 동시에 슬픈 역사를 마주할 때면, 내가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이 비양심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향수라는 것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여기에 온 뒤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전에 없던 새로운 곳에서 20대 못지않은 빠듯한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평일에는 그 어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도 없는 곳에서 오롯이 나의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줄곧 꿈꿔왔던 생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국적을 제외한 그 어떤 선입견도 없는 곳에서. 어디의 출신도 누구의 딸도 아닌 그냥 나로서 낯선 곳이 사는 삶은, 새로 능력치와 HP가 부여된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게임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사는 동안 이러한 마음의 부조화는 나를 계속 따라다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불편하다고 모른채 하지 말고 즐겁다고 잊어버리지 말기. 스스로 멱살 잡고 모국 떠나온 삶이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우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충실히 또 재밌게 살자.

아침 카페에서 든 생각. 오늘도 투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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