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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상/도쿄생활

미우라 하루마를 기억하며.

by Kyolee.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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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관검색어에 사망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믿을 수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채널을 돌리다 무심코 멈춘 한 방송의 작은 사각형 안에서 패널로 참석한 그가 웃고 있었다. 예의 그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이던 청년이 아닌, 침착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띠는 그의 모습에 나는 '참 낯설다, 미우라 하루마도 나이를 먹는구나' 하며 잠시 하던 일을 멈추며 화면 속의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처음 알게 되었던, 아니 시청자 중의 한 명으로서 배우인 그를 처음 보게 되었던 건 2008년 ‘블러디 먼데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천재적인 해커 능력을 갖춘 평범한 고등학생의 역할을 맡은 그는, 약간의 사이코적인 일본 드라마 특유의 스릴러를 시종일관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해커의 역할로 미스테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명석한 모습과, 가족, 친구, 타인을 위해 고뇌하고 희생하는 인간적인 캐릭터. 스토리의 긴장감이 풀릴 때쯤, 함께 안도하며 웃게 만들었던 화사한 눈웃음과 시원한 미소. 드라마 속 캐릭터뿐 아니라 어느새 나는 배우 '미우라 하루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일본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면 '취존(취향 존중)이 불가능한 영역' 이라고 비난받기 쉽지만, 10년 전 나는 일본 드라마 속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 번쯤 저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러다 정말로 일본에 단기 어학연수로 오게 되었을 때는,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연예인들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벅참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고 설렘을 느끼게 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그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참 멋있는 배우로 성장했구나' 하고 반가움을 느끼며 그를 응원했다. '나를 떠나지마(私を離さないで)' 라는 드라마에서는 희망을 잃어가며 절망뿐인 삶을 하루하루 연명하는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맡은 그를 보며, 정말 대단한 연기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서 '조금 더 밝은 연기를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실제로 그 드라마를 본 후 일주일 정도 우울함을 느끼기도 했다. 

 

.. 방금 전까지 그에 대한 추억에 젖어 있던 나는 또 다시 그의 죽음이라는 글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화사한 미소로, 그렇게 매력적인 배우로 변신한 그가, 대체 왜? 

멍하니 그의 기사를 찾아보고, 그와 친했던 배우들의 SNS에서 애도의 글을 확인하며 그의 부고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당한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해 본다. 그렇지만 자꾸만 심장이 턱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든다.

'뭐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던거야?' 그를 둘러싼, 그를 괴롭힌,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탓해 본다.

 

TV에서는 그의 사망 보도가 지나가고, 곧이어 어느 지방에서 폭력배들이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봐봐, 세상에 저렇게 나쁜 사람들이 떳떳하게 잘 살고 있어,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주변인에게 사랑받던 당신이... 왜?'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을 허공에 내뱉으며 그를 떠올리는 것도, 억지로 생각을 짓이기는 것도, 결국엔 어느 쪽도 그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는 괴로운 일일 뿐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일순 무기력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가 발견된 곳은 미나토 구의 맨션. 미나토 구라면 그저께 내가 다녀온 곳이고, 거리 상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가 죽었다. 

만약 내가 그의 매니저였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그를 찾아갔을 텐데. 내가 구급대원이었다면, 무슨 힘을 다해서라도 그를 살려냈을 텐데. 내가 그의 친구였다면, 그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그를 지켜보며 위로했을 텐데. 내가, 내가. 

아직 그의 영혼이 여기 남아 있기를, 신의 실수로라도, 기적으로라도 그에게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이 모든 게 가짜이기를, 깜짝 카메라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그를 정말로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다. 팬으로서 나는 당신을 정말 많이 좋아했구나. 환한 그 미소가 눈에 아른거려 꿈에 나온 적도 있었지. 어젯밤 꿈에 나는 미처 너의 슬픔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떠난 그를 추억하며 엉엉 울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이 모든 게 꿈이길. 

 

팬이라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나는 배우로서의 풋풋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젊은 날들을 추억하고, 멋있게 변신한 그를 보며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함께 느끼는데. 그의 연기를 보며 스릴과, 재미와, 슬픔과 우울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많은 시간을 당신과 함께 해왔는데. 나의 추억속에서 그는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데.

그는 평생동안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었다. 

 

참 멋있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앞으로 영영 볼 수도 만질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참 당신을 좋아했었다.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길, 슬퍼하지 않길. 편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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