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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상/한국생활

[경북/상주] 평화로운 고향에서의 날들

by Kyolee.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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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 해를 살았던 곳을 떠나 낚시잡이와 해녀가 드나드는 작은 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서해대교가 바로 보이는 곳에 일자리를 구했고, 그렇게 스물의 후반이 될 때까지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문명(?) 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작은 곳에서만 살았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한 곳은 그린벨트가 막 풀리기 시작한 곳이었다. 학교의 산책길에는 이런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뱀과 멧돼지가 서식하니 밤에는 산책을 주의하시오.'

 

지난 가을의 상주
여름의 상주

 

줄곧 작은 마을에서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이 있는 풍경이 그리웠다. 바람에 들국화가 흔들리는 소리, 한적한 들판을 걷는 두루미의 모습, 구름의 그림자가 머리를 스치우는 기분, 그런 것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더없이 그리웠다. 

 

상주의 풍경

 

친구들은 나에게 편의점도 없고 치킨 배달도 안 되는 곳에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의아해했다.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동차나 경운기를 타고 다니고 하루에 버스가 두어번 정도 순환한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위해 논밭 사이에 좁게 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금 이 순간, 이 넓은 광야 위에 시원한 바람을 나 혼자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온 몸에 전율이 휘감기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데다 잘 짖지도 않는 이 녀석의 이름은 '오레오'다. 오른쪽 얼굴은 하얗고 왼쪽 얼굴은 까만 것이 오레오 쿠키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꽤나 순종적이지만 양몰이 개의 습성 상 운동량이 많아서 종종 산책을 시키는 게 아니라 산책을 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레오와 도둑 고양이의 대치

 

가끔은 도둑 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찾는다. 남은 음식물들을 닭 모이와 함께 닭장에 넣어 주었더니, 그것을 노리고 나타난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양이 밥을 따로 챙겨 주었는데, 어느 날 닭장에 침입해 닭 한 마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그 뒤로는 '고양이 먹이 금지'가 우리 집의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그런데 글쎄, 그 고양이가 새끼를 대여섯 마리나 낳더니 어느샌가 새끼 고양이들이 닭장 옆에서 애옹애옹 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빠는 고양이들이 울 때마다 먹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어미는 젖이 나와야 하고, 새끼는 뭐라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측은지심 때문에. 

 

닭도 키우고, 고양이도 돕기 위해서는 오레오의 역할이 크다. 고양이는 고양이 밥을 먹되 닭장 안의 닭을 넘보지 않도록 레오는 닭장을 지키는 수문장인 셈이다. 

 

 

며칠 동안 암탉이 품고 있던 달걀 안에서 드디어 병아리 세 마리가 태어났다. 삐약삐약 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귀여운 지, 조그만 알 안에서 태어나 쫑쫑 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신비로운 지,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면 괜히 흐뭇해진다. 

 

아빠의 텃밭

 

집 옆의 작은 텃밭에서 키운 상추, 쑥갓, 부추, 적겨자, 깻잎, 고추, 당귀, 호박, 옥수수, 토마토. 틈틈히 일군 작은 텃밭의 농사가 풍년이라 아빠는 더욱 부지런히 밭을 손질했다. 

 

 

서늘한 저녁에는 집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한다. 여기에 직접 키운 상추, 깻잎, 쑥갓, 당귀, 부추를 올리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선한 자연의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풍경이 있는 우리 집 처마

 

산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는 처마에 달린 풍경이 띠링 띠링하고 울린다.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가만히 허공에 시선을 둘 때도 있다. 

편의점이 없어도 괜찮고, 치킨 배달이 안 와도 괜찮아. 적막함 사이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내 마음에 여유를 불어넣는다. 이 자연이 주는 풍족감에 감격해서 때로 헉 하는 탄성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올 때도 있다.

외서면의 지난 가을

 

아마도 나는 이 여름을 만끽하다 무더위의 계절과 함께 떠나게 되겠지. 황금빛 벼가 익어가던 지난 가을의 모습을 올해는 미처 눈에 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더더욱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또 계절이 흘러가는 지도 모르며 바쁘게 살겠지. 그래도 이 곳은 항상 그대로일 것이다. 여름은 여름의 모습대로. 가을은 가을의 모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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