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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상/도쿄생활

이별,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동경에서의 새로운 시작

by Kyolee. 201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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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고 가족, 친구, 그리고 모국과의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나의 사랑하는 반려견, 레오

 

전날 밤에는 마지막으로 레오와 산책을 했다. 짧았던 시간 동안 이 녀석을 향한 애정은 넘쳐났는데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 탓에 마음껏 놀아주진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마당 바위에 걸터앉아 몇 번이고 레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천진한 그 눈으로 나에게 놀아달라며 흙 묻은 손을 어깨 위에 턱 턱 걸치고는 했다. 

 

한국의 맛을 그리워 할 나를 위해, 친구가 보내준 풀○원의 소스들

 

내가 일본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먼 곳에서 택배를 보내왔다. 대기업 식품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친구는 자기 회사의 소스와 라면 등등을 아이스박스로 한가득 담아 보내주었다. 이 친구 역시 올해부터는 해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본인 일로도 바쁠 텐데 굳이 잊지 않고 나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다. 이 은혜를 언제 다 갚으라는 건지,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24년 지기 친구가 출국을 이틀 앞두고 보낸 선물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종종 선물을 보내주던 친구는 어느새 군인의 부인이,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사실에 친구는 딸을 보내는 엄마의 심정에 이입이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PX에서 레토르트 식품, 맛다시, 그리고 내가 평소 좋아하던 딸기 몽쉘까지 담아 보내주었다. 

친구들의 고마운 마음에 언제쯤 보답할 수 있을지. 

 

떠나기 이틀 전. 아빠의 학창 시절 친구분이 나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고깃집으로 향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아 걱정되는 한 편, 해외로 나가서 자립을 한다는 사실이 기특하다며 칭찬 아닌 칭찬도 듣고. 

 

그렇게 한껏 고향과, 소중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흠뻑 취해있던 짧은 나날이 지나고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는 날 아빠는 이별을 생각하기 싫었는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를 배웅해줬다. 타국에서의 첫 시작을 엄마가 동행해주었기 때문인지, 아빠와 평소보다 긴 포옹을 하고 나서도 그때까지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우에노의 돈가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회사 사람을 만나 키를 전달받고, 대충 짐을 정리한 후 엄마와 함께 우에노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던데 웬걸, 새벽부터 나온 바람에 너무 피곤해서인지 많이 먹지는 못했다. 

다음 날 아침은 친구가 보내준 레토르트 돼지김치찜을 먹었다. 여행을 왔을 때는 일본 음식이 그렇게나 맛있더니, 왠일인지 이번에는 일본에서 고작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 한식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심리 효과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걸까. 

 

아사쿠사 길거리 공예품과 아게만쥬

 

도쿄에 처음 온 엄마를 위해 짧은 관광코스로 아사쿠사 센쇼지에 가서 쇼핑 거리를 구경하고, 기념 사진도 잔뜩 찍었다. 유명하다는 아게만쥬도 하나 먹었는데, 만쥬 튀김이라고 해야 할까? 튀김 소보루의 맛과 비슷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신주쿠
일본의 가성비 레스토랑, 세이제리아의 피자
미트 토마토 소스 파스타

 

쇼핑을 위해 신쥬쿠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딱히 입맛이 없다고 하고 나도 그다지 당기는 음식이 없어 일본의 가성비 레스토랑이라는 세이제리야를 갔다. 피자가 399엔, 파스타가 399엔. 심지어 이것도 조금씩 남겼다. 파스타와 피자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새로운 경험이라며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다. 다음에는 맛있고 멋있는 곳을 많이 알아둬서 엄마가 오면 데려가야지.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는 한동안 먹을 밥을 해 주겠다며, 굳이 마트에서 쌀을 사서 밥을 지어주었다. 일일이 밥을 퍼담아 주는 엄마 옆에서, 이제 엄마가 가면 누가 밥 해주지? 내 농담에 엄마는 또 눈물이 왈칵 나오고, 우리는 이제 헤어지는 날까지 절대 울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가 눈썹을 정리해주자마자 엄마는 '이제 딸이 한국에 없으면 누가 눈썹을 정리해주지?' 하고 또 눈물을 보였다.)

 

나리타 공항의 오야꼬동과 소바

 

셋째 날. 함께 도쿄에서 2박 3일을 보낸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이다. 그동안은 같이 여행을 온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이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오야꼬동과 소바를 마지막 점심으로 먹고, 사촌 동생들에게 보낼 도쿄 바나나와 히요코 만쥬를 사고. 그리고 정말로 헤어짐의 순간이 와 버렸다. 

 

나리타공항에서 돌아오는 스카이라이너는 혼자.

 

아빠와 부부동반으로만 해외여행을 다녔던 엄마를 위해, 입국 후 게이트를 찾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공항 검색대 앞까지 함께 걸어갔다. 검색대 앞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드는데, 이제 진짜로 당분간은 안녕이구나, 엄마랑 나는 정말로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나라에 살게 되는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멀리서 손을 흔들고 보니 엄마는 캐리어 하나를 올리더니 어느새 눈이 빨개져서는 고개를 숙이고 나를 못 본채 하고 있었다. 이 순간은 다시 생각해도 목이 메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울리지 않기 위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리타로 가는 스카이라이너 안에서 엄마는 '꼭 엄마 아빠 품을 떠나야 겠니' 하고 투정 어린 농담을 하면서도 '우리 딸은 꿈도 많고 똑똑하니까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야지'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내 안에서 샘솟던 알 수 없는 자신감들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믿고 응원해 주었던 부모님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함께 지내던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느끼곤 했었다.  

 

'실패해도 괜찮아, 너의 꿈을 믿고 도전해, 너는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내 자식이고 더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재능있는 사람이야.' 스무 살이 되던 때부터 엄마, 그리고 아빠로부터 들었던 한결같았던 메세지였다. 

일찍 출근할 때,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

 

어느새 출근 이주일 째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소중한 고향의 추억과 부모님을 떠올리면 여전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출근을 하는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이자 자랑. 그 얼굴을 떠올릴 때면 약한 마음보다는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강한 힘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잘 할 것이고 잘 지낼 것이다. 첫 출근을 하던 날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막상 부딪혀 본 이 곳의 사회와, 조직생활은 생각보다 나에게 잘 맞았고 따뜻하고 편안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안정이 찾아와서 오히려 이런 내 모습에 놀라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 만큼, 멀리 있는 소중한 나의 가족과 친구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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