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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Diary

석박사, 대학원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by Kyolee. 201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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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이하여 이제 막 다시 시작하는 블로그이지만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있다. 

 

첫 번째는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을 일단 적어두기 좋다는 것. 

생각은 물에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처럼 우선 한 번 시작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뻗어나간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생각의 확산 속도를 펜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굳은살이 박힌 검지와 중지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뇌 속에서 불어나는 중구난방한 형태의 생각들을 적어내리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일단 써버리기 시작했던 글들을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실 양날의 검이라도 느껴지는 것이, 간밤에 아무리 진심을 다해 쓴 간절한 글이라도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글을 쓴 본인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노출되는 블로그는 어떠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발적인 노출에 스스로 발을 내딛는 것은, 몇년 몇월 몇일 몇시 즈음에 흘러가고 있던 나의 수많은 생각과 기분 중 하나 쯤은 주워담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잊어버리게 되는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들을, 심지어는 바로 전 날 먹었던 점심 메뉴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중하지만 쉽게 흘러가버리는 작은 순간순간들의 일부분이라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게다가 어딘가에 노출이 된다는 점은 묘하게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의무 혹은 업무에 대해서는 책임을 가졌으면서, 자신의 마음과 내면의 기록에 대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무책임하게 살아왔는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는 나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점잖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은 '현생에 치여서 블로그를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자기 암시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무얼 했냐 하면, 알람도 없이 충분히 자고 일어나 병원에 다녀왔다. 알러지 검사를 위해 혈액 체취도 하고 (건강한 사람이라 자부하지만 올해의 늦가을 무렵도 비염으로 고생을 했다) 점심으로 먹을 참치김밥도 사서 오랜만에 연구실로 출근도 하고.

외할아버지의 부고와 갑작스러운 이석증으로 일주일정도를 쉬었다. 주인의 손길을 잃은 채 중단되었던 연구 자료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머리가 지끈 지끈 아프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데야 할 지도 모르겠다. 분석 단계에서 예상치도 못한 결과가 나와서 몇 번 실험을 다시 하고, 매개변수를 바꿔보기도 하고.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하나씩 바꿔봤지만 이렇다할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아마 그 시점이 나의 지지난주 연구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솔직히 말하면 더이상 손을 데고 싶지 않다. 이 연구의 주인은 내가 아닌지도 모른다. 모처럼 열어두었던 연구 관련 폴더들을 하나씩 닫았다.

오늘은, 대학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Mt.Rainier Caffè Latte
일본에서 사 온 Mt.Rainier Caffè Latte와 함께.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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