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계획한 일들을 준비하랴, 대학원 생활을 정리하랴 이래저래 바쁜 연초였다.
지도 교수와의 면담은 좀처럼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불편한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마음은 해방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대여섯 차례에 걸쳐 납득을 하지 못하겠다며 붙잡는 지도교수를 설득했고 결국에는 그동안의 일들만 정리한 채 대학원을 미련없이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 4년의 시간이 의미없었다 손 치더라도 지금의 내 나이에 아까운 청춘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 시간들을 보상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석사학위라도 받아서 향후에 박사과정으로 다시 연구를 하고 싶을 때를 위해 대비하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Application for Dropping of Degree Program 을 인쇄했다. 나의 경우는 현재 석박사 통합과정 (Combined Master's-Doctoral Program)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위 과정을 드롭하고 석사 과정(Master's Program)으로 변경하는 신청서인 셈이다.
신청서 창을 열고 막힘없이 이름과 학번을 썼지만 Reason for Change (변경 사유) 창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석박사 4년차에 학위를 드롭하는 이유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솔직하게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배짱은 없는지라 소심하게 한 줄 적기 시작한다.
To get a job. 취업을 위해서.
4년의 경력을 뒤로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내가, 2년차도 아닌 4년차에 드롭을 하는 이유가 단지 취업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크게 웃을 일이다. 물론 나는 대학원 그 자체, 연구 그 자체에 있어서는 흥미를 가지며 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이상 이 연구실에서 남을 수는 없다.
박사 학위를 이 곳에서 받는 것은 받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나와, 내 학부때 은사님의 결론이었다.
자퇴를 하겠다던 내가 이번에는 학위 변경 신청서를 가지고 갔더니 교수는 예의 그 모습을 숨기고 순순히 서명을 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환히 웃으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추가적으로 내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늘어놓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석박통합과정에서 석사과정생으로 무탈히(?) 변경 신청을 마쳤다.
졸업은 8월이 되겠지만 중간에 취업을 할 수도 있으니 짧으면 세 달, 길면 그 이상을 이 곳에서 졸업논문을 쓰며 잡일을 하며 보내야 하겠지. 그러는 동안은 새로 시작하는 공부에도 소홀할 수가 없다.
올 상반기는 정말 정말 바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