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와 코타츠가 한 자리 씩 차지한 나의 집, 여기에 캐롤까지 틀어두니 연말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스팀 우유를 더해 만든 따뜻한 라떼, 거기에 칼디에서 사 온 슈가 그레이즈드 진저 브레드를 더하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제는 블라드의 친구인 바실리 부부가 놀러 왔다. 블라드가 일본에 왔던 2022년, 모스크바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부터 일본 나리타 공항에 입국하기까지의 여정을 우연히 함께하며 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작년 연말 바실리네 부부를 처음 초대했을 때, 그는 일본에서의 경력이 없어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 회사에 지원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때 마침 우리 스쿼드에서는 C# 엔지니어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이미 다수의 지원자와 면접을 보고 최종적으로 가장 평가가 좋았던 한 사람에게 내정 통지서를 보내기 직전의 단계였다. 다행히 내 소개를 들은 부서장과 프로덕트 오너는 레쥬메를 확인하자마자 며칠 만에 면접을 잡았다. (우연하게도, 바실리는 고향인 벨라루스의 IT기업에서 C#과 Azure 경력을 갖고 있어 지원 자격에 딱 맞았고, 영어로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는 데다가 내 추천서까지 있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동료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바실리가 일본에 온 진짜 이유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헤비 메탈 밴드로 성공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나는 그가 왜 하고 많은 나라들 중 굳이 일본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주얼 락이나 헤비메탈이 일본에선 마니아가 꽤 있어서인가 하고 추측했다.
그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한 촬영이나 콘서트 영상을 종종 보여주었지만, 며칠 전 돌연 일본인 멤버들과는 밴드 활동을 하는 게 힘들다며, 이렇게 해서는 꿈꾸던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풀이 죽은 채 말했다. 또, 일본의 사회는 외국인을 수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자신이 이곳에서는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일본은 소득에 비해 세금도 많고 물가가 비싸니 일본을 떠나 러시아로 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근데 그게 당장 두 달 후라니...? 아니 뭐가 그렇게 결정이 빠르니!
2년이란 시간 동안 어학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밴드 연습을 하다, 1년간 일을 하고 다시 돌아가겠다니 나로서는 조금 아깝고 또 아쉬운 결정이지만, 어쨋든 그의 인생이니 좋은 선택이기를 바랄 뿐.
그나저나 안 그래도 모국의 정세가 어지러워 가족들이 오지도 못하는 블라드의 유일한 친구가 일본을 떠나게 되었으니 괜히 내가 다 외로워지는 기분이다.
바실리가 몇 달 전 벨라루스에 다녀왔을 때 사온 과자와 치즈, 초콜릿을 잔뜩 얻어 신이 난 블라드를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하다. 나도 같은 외국인이긴 하지만, 당장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가도 한국 라면, 한국 과자, 한국 음식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블라드는 그러기 힘드니까.
심지어 카라오케에 가도 한국 노래는 순위권에도 많이 있는 데다, 신곡도 바로 업데이트되는데 러시아 노래는 하나도 찾을 수 없으니까.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일 년에 한국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친구들도 종종 놀러 오는데 블라드는 가족조차 3년째 못 보고 있으니까. ;_;
이 녀석이 외롭지 않도록 조금은 더 잘 챙겨줘야겠다는 나름의 책임감 (?) 같은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