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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상/도쿄생활

240120 - 일본 취업 5년차 개발자, 2023년을 돌아보며

by Kyolee.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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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포스팅 치고 다소 거창한 제목을 지어보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2024년의 시작이 도저히 잘 정돈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사진첩을 둘러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자.

 

카고시마 킨츠바, 돈토로 라멘, 카고시마 시로야마 공원 전망대

1월, 친구들과 함께 가고시마 여행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 짝이 생겼다. 

 

하쿠바 고류 스키장 리조트

2월, 겨울의 눈이 가득한 하쿠바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평범했던 일상과 혼자 다니던 거리를 거니는 것이 함께하는 데이트가 되었다.

 

일본 3월의 벚꽃, 그리고 스타벅스 사쿠라 라떼

3월, 도쿄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를 위해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벚꽃도, 새 집도 함께 보러 다니는 짝꿍이 옆에 있었다.

 

4월, 일본의 4월은 한국의 3월과 같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달. 약 35년간의 빚을 갚아나갈... 나의 집이 생겼다. 처음으로 가족들을 일본으로 초대했다. 

 

내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하늘. 일본의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맑다.

5월, 탕진했던 달. 냉장고, 세탁기, 침대, 에어컨, 청소기, 수납함, 책상, 의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가전 가구들을 사느라 바빴다.

 

어서와, 디즈니 랜드는 처음이지?

6월, 친구가 도쿄로 놀러온 날. 12년 만에 디즈니에 다녀왔다. 그때는 디즈니 씨였고, 이번에는 디즈니 랜드였지만.

다카마쓰 영업소로 영업 체험을 다녀왔다. 따뜻한 직원분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 나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일본에서의 삶에 있어서도 많은 자극과 위안을 느꼈던 날들.

 

한국인이 유럽계 회사의 일본 대표로 참여한.. 브랜드 마케팅, 소중한 기회였다.

영업 체험이 끝나자마자 네덜란드로 다녀왔다. 회사의 브랜드 마케팅 홍보를 위한 엔지니어 중 일본 대표로 내가 뽑혔다.

나에게 줄곧 꿈의 나라였던 네덜란드로 나홀로 출장을, 그것도 광고 촬영을 위해서 다녀오다니.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회사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문화, 누구나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라는 것을 공시적인 자리에서 말할 수 있어서 의미있었던 시간. 

 

관동에 살면서도 가마쿠라를 처음 가 봤다. 가마쿠라의 대불.

8월, 바베큐와 마츠리로 끝난 여름. 카마쿠라 여행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바라본 후지산

9월, 본격적으로 업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본 세금 제도 개편은 금융팀의 엔지니어이자 프로덕트 오너를 하고 있던 나에게 최고의 압박감을 선사했다. 분명 워라밸이 있는 일터였지만, 미해결의 문제들, 블랙박스와 같은 시스템, 전혀 협조해주지 않는 벤더, 돈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등등 쉽지 않은 상황을 매일매일 직면해야 했다. 

프로덕트 오너의 업무를 50%, 기존 엔지니어의 업무를 50% 해오던 나는 마침내 반반이라는 말은 치킨 반 후라이드 반에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 엔지니어, 반 프로덕트 오너라니. 한 가지 역할에 100%의 힘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결국 도합 200% 의 에너지를 쓰던 나는 진지하게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8회사에서 바라본 도쿄의 동쪽.

10월,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동료나 상사 마저도, 누구에게나 어려운 프로젝트이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라, 일이 잘못되더라도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니 괜찮다. 라며 나를 의식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기인지 완벽주의적인 기질 때문인지 나는 주중에는 완전히 일에만 몰두했고, 주말에는 넉다운이 되어 개인적인 생활의 즐거움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회사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다녀오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으로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했다만.

 

우리 강아지, 속초 여행, 친구들과의 커피타임.

11월, 마침내 휴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12월이 릴리즈 예정이었지만, 2주간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했고 매니저는 잘 생각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휴가동안은 일을 완전히 잊고 지내면서, 그저 쉼에 집중했다. 가족들과 함께하고, 친구를 만나고,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엄마의 차에 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우울함과, 완벽하거나 최고로 보이고 싶은 그동안의 심리를 비로소 마주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함,  욕심, 좌절감, 모두 당연한 인간의 감정인 것을. 자책할 필요도 없다. 완벽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 

 

초보의 빵스타그램. @kyoleepang

 

12월, 예민하기도 했고 복잡하기도 했던 심정은 여전했지만 오븐을 사고, 베이킹을 시작했다. 생산적이지 않은 것들에 가끔은 시간과 노력을 쓰자. 그렇게 해서 나는 베이킹을 나의 새로운 취미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이킹은 맛있는 빵과 쿠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상당히 생산적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점점 사라졌다. 상황과 환경을 탓하며 우울함을 느꼈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동료에게 말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나 불안함은 누구나 느끼는 거예요. 남들의 사소한 피드백과 부정적인 멘트는 상처가 되는 게 당연하고요. 하지만 그럴 때 명상을 하면서 바깥에서 들어온 말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이미지화하곤 해요. 그러면 더 이상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니까요.' 카메룬에서 온 동료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2023년, '아무리 어려워도 나라면 할 수 있고, 꼭 해내야만 해' 라고 독립적이며 성취를 해나가는 나에게만 취해있던 나는, 사실 가장 외롭고 힘든 순간에 나의 짝꿍, 가족, 오래된 친구, 그리고 동료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2023년 소소한 일상의 브이로그의 기록. 

https://youtube.com/@kyolee8493?si=5qJ4tdfyAzwecPiZ

 

KyoLee 쿄리

tokyoleean@gmail.com Hi it’s Lee in Tokyo 🗼

www.youtube.com

 

막 시작한 빵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yolee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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