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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일본취업

해외 취업 후의 이야기, 해외 생활이 고단하다는 인식에 대한 나의 생각

by Kyolee.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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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파티


최근에 여행을 온 친구들도 그렇고,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는 지인들도 그렇고 대부분 나에게 하는 첫 마디가 '타지에서 고생 많을텐데 대단하다 (혹은 대견하다)' 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일본에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부동산에서 집을 계약한다던지, 은행이나 구약서에서 행정처리를 한다든지) 이방인으로서 꽤나 골치아픈 일들이 있었다.아마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제아무리 즐거운 해외 여행이라 할지라도 내가 살던 나라,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제일 좋지'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어떤 점이 해외생활의 고생스러움, 혹은 힘든 점일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장점을 꼽으라면 늘 여행같은 기분으로 새로운 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있겠다. 어느새 일본생활 4년차이지만 여전히 나는 절분(입춘의 전날, 바로 오늘이다)에 에호마키를 먹는 방법을 모르며, 새해에 오세치요리나 오조니를 먹어본 적이 없다. 에도시대의 채석장인이 깎아놓은 바위 지형이 마치 던전을 연상하게 하는 노코기리 산은 감춰둔 탐험심을 돋우고, 나쓰메 소세키가 사랑한 카구라자카, 오래된 목조건물의 찻집과 상점가들이 늘어선 야나카긴자, 각양각색의 중고서점을 구경할 수 있는 진보쵸는 여전히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한다.

이제 사람들 얘기를 해볼까, 유럽계 회사에 근무하는 나에게는 당연하게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 동료가 많다. 일본인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그들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일본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다. 코로나의 제한이 풀리기 시작한 작년 한 해는 친구를 따라 파티에 가고, 파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또 파티를 하고, 동료의 소개로 여행을 가고, 그 곳에서 또 친구를 만들면서 보냈다. 가볍게 사람을 사귀는 것에는 젬병이지만 스포츠, 오락, 하이킹, 맛집탐방, 바베큐, 벚꽃축제, 피크닉, 불꽃놀이, 섬 여행, 오래된 절 탐방, 신사 탐방, 바다여행 등을 함께하며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모국어는 모두 다르지만 감히 돈독한 감정으로 연결된 친구들이 꽤나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직장생활 얘기를 한다면, 아마 이 직장에서 배운 관대하고 아름다운 조직 문화에 대해 논문이나 책을 내도 될 정도라고 동생은 늘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나의 가치를 존중받고 노력에 대한 보상이 따르며, 하고 싶은 일에 전념을 하는 것만으로도 칭찬과 박수가 따르는, 실수는 다음의 개선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그조차 도전의 일환이라 격려해주는, 늘 성장하고 싶게 만드는 최고의 일터.. 단점이 있다면 네덜란드의 연간 근로시간이 한국보다 530시간 정도 적기 때문에 내가 그토록 즐거워하는 업무 시간이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보다 적다는 것? (물론 농담이다. 일하는 것이 나의 행복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것에도 집중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한국에 있을 때의 직장생활과 연구생활을 포함한 나의 근로시간은 오로지 경제활동 그 자체이자, 수입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현재는 직장이 나의 자아실현의 장이자 성장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곳, 나의 워크/라이프/머니 밸런스를 충족시켜주는 안전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업무와 무관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더이상 통근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여행지나 카페 혹은 해외에서 근무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메이크업을 하거나 예뻐 보이는 옷을 입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어쩌다 민낯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출근하더라도 사람들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업무 리딩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옷이나 물건으로 주변을 채우기보다는 맛있는 것, 여행하는 것, 재미있는 것들로 순간순간 추억을 채우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 생활과 의식에 있어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를 뽑으라면 해외에서의 생활은 온전히'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오랜시간 책상에 앉아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직장 내 역할에 익숙해진데다 6개월 미만 단위로는 해외근무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편안한 장소인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것이 좋고, 뻔한 것보다는 미지의 것이 좋으며,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것, 무모한 것에 도전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에는 마다라오, 다음주에는 카고시마, 그 후에는 하쿠바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이 곳에는 내 시선이 닿지 않은 수많은 도시들이 기다리고 있고, 나는 있는 힘껏 내 젊은 날의 페이지를 신나는 것들로 채우리라.

단지 새해인사를 보내온 몇몇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떠올랐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간결하다. 혹여나 해외 생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무의식 어딘가에 있는 '해외 생활은 고단하고 외로울거야' 라는 생각으로 도전을 주저하고 있다면, 여행같은 하루 하루, 가치를 인정받고 빛낼 수 있는 일터가 일상이 되어 고단함과 외로움, 경쟁이나 치열함 따윈 떠올릴 새도 없이 매일매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는 날이 기다릴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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