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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일본취업

Life Update! 첫 승진.

by Kyolee.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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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블로그 업로드를 미루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업데이트를 꼭 작성하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아 본다.
어느덧 일본에 온 지도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달로 3년 하고 1개월째이지만)
전직을 해서 현재의 회사에 입사한 지는 이제 2년차가 막 지났다. 개발 경험도 부족하고 컴공 전공자가 아니었던 나에게는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동료들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꽤나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훌륭하고 친절한 매니저와 동료들을 만난 덕분에, 늘 눈치 보지 않고 질문을 퍼부을 수 있었다. 그들은 늘 내가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나의 눈높이에 맞추어 몇 번이고 설명해주곤 했다.

"질문하는 것은 너의 일이야, 대답해주는 것은 우리 매니저들의 일이야,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다시 해도 괜찮아, 너는 확실히 알 때까지 그 질문을 계속해도 돼"


매 순 간 따뜻한 코멘트도 함께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회사생활은 늘 감사함과 설렘이 함께였다. 동료들과 매니저가 내게 해 준 것만큼 은혜를 갚고 싶다는 마음, 거기에 책임감이 더해지니 어떤 일에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매니지먼트들에게 성실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비추어져 내게 좋은 평가와 칭찬으로 돌아왔다. 비즈니스 유저들의 요청사항과 개선 업무를 늘 우선시 했던 나는 타 부서로부터 사내 특별 제도인 Thank you card를 세 장이나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성과 평가에 반영되어 사원으로서는 꽤 괜찮은 보너스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8월의 어느 날, 내가 존경하는 프로덕트 오너가 나를 불렀다.

"내가 보기에 넌 다른 엔지니어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그동안 너를 보며 비즈니스의 요건을 명쾌히 이해하면서 전체를 보고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비즈니스 유저들에게 늘 알기쉽게 설명했고, 그건 우리 팀은 물론 파이낸스 부문 전체에 큰 도움이 되었어. 알다시피 내가 이번에 Divison Manager가 되기 때문에 프로덕트 오너 자리를 이어서 맡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난 그 자리의 적임자로서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는 내가 이제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상기된 표정으로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단숨에 이야기했다.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매니저와의 미팅 때 나의 커리어 패스에 대해 10년 후 프로덕트 오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업무에 임하라는 이야기를 했던 터였다. 그런데 당장 다음 달부터 프로덕트 오너라니, 그런 자리는 지금의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그런 것은 10년 후에나 주어질까 말까 한 기회이니, 나는 조금 더 편안하게 사원으로서 윗 사람들의 기특한 시선을 받으며 안락한 이 자리를 누리려고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당황한 나의 입에서는 'it's too sudden... (너무 갑작스러워)'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프로덕트 오너는 이해한다며 내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2년간 나를 지켜본 결과, 충분히 프로덕트 오너가 될 자격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적응하기까지 주니어 프로덕트 오너라는 직함과 함께 충분한 트레이닝을 지원하며 언제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서포트하겠다는 말을 함께했다.

주말 내내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프로덕트 오너가 된다는 것은 이제 팀의 엔지니어로서 한 파트만을 맡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개발 액션을 구체화하고 우선순위화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팀을 리드하는 것에 내가 재능이 있는가? 애초에 나는 리더나 코치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던가? 나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번 제안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오직 내게 주어진 귀중한 기회라는 것만이 확실한 사실이었다.

우리 스크럼 팀 내에는 수많은 개발자가 있다. aws의 전문가로서 타 금융기업에서의 경험을 가진 시니어 엔지니어로부터 azure 경험이 풍부한 클라우드 엔지니어, 개발과 인프라 경험이 있는 시스템 엔지니어 등등... 그들을 뒤로하고 고작 2년의 경력을 가진, 심지어 개발 경험도 풍부하지 않은 나에게 스크럼 마스터의 기회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프로덕트 오너라는 제안을 하다니. 내게 기대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결국 스스로에게 확신을 하지는 못했지만 55% 정도의 호기심과 도전정신 비슷한 마음으로 그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처음 파이낸스의 스크럼 팀에 입사하면서부터 프로덕트 오너를 보며, '저 분은 참 멋지다, 인격적으로든 전문적으로든 나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싶다'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꿈꾸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다음 달부터 주니어 프로덕트 오너가 되고, 승진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 팀 동료들과 유관부서들에게 알려졌다. 이메일에는 내가 프로덕트 오너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이 지난 2년간 충분히 보여졌으며, 이번 변화가 파이낸스 부서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는 멘트가 함께했다.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꺼이 이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여 또 한 번 대범하게 성장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오랫동안 바래왔던 불투명했던 꿈들이 이제야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던, 유학 경험도 없는 토종 한국인이 영어와 일본어를 쓰며 일하고 싶었던, 비행기를 많이 타고 싶었던, 노력을 인정받고 대우받고 싶었던, 일하는 곳을 사랑하고 싶었던... 그 단순했던 바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자, 이제 또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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