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책을 좀 읽어볼까' 라는 결심을 세우고 나서 한번 빙 둘러본 책장에는
겉표지만이 익숙한 몇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책은
사랑에 빠지면 사랑꾼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애절한 사랑 시를 쓰곤 하던 남동생의 책일 것이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가수 '요조'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내게도 종종 들려주곤 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요조'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불현듯 그 여가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머릿속에서 방해공작을 펼쳤다.
책의 소개에는 제법 큰 글씨로 '순수한 인간을 실격시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라는
누군가가 꽤나 진지하게 평을 내린것 같은 문구 하나가 적혀있다.
그러나 이 애처로우리만치 나약한 인간 요조에게서 나는
무언가를 비판하겠다는 의도는 눈꼽만큼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불쌍한 작자는 시종일관 비난의 칼날을... 아니 칼날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자신을 혐오스럽고도 소름끼치는 인간으로 표현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소개말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투신자살을 한 것은,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자살에 성공한 것은
1948년... 그러니까 이 소설의 집필을 끝내고 나서라고 한다.
다자이. 대부호이자 귀족원 의원을 맡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귀한 아들로 자랐지만,
스스로를 표정 뿐 아니라 인상조차 없는 이상한 사내라고 표현한 그.
그의 일생과도 같은 이야기는 읽는 내내 허무함과 불안함을 동감하면서
요조의 생에 과연 내가 안타까움이나 동정심을 느낄 자격이 있는가, 하고 반문하게 된다.
'부끄럽다, 나 또한 부끄럽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허무한 상황 속에서
죄의식에 빠진 순수한 영혼의 일생기.
이해가 되지 않을 땐 다시 돌아가서 찬찬히 흩어보고,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되새김질 해 보았지만
아직도 나는 요조를, 다사이 오자무를 완전히 정의할 수가 없다.
다만, 그의 말대로
눈을 감으면 금새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정도로 무표정하고 특징이 없는 그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려고, 애꿎은 책의 표지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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