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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Book

야마자키 마리 - 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國境のない生き方 私をつくった本と旅)

by Kyolee. 202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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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삶, 괜찮습니까? 

 

쳇바퀴 같은 삶에 넌더리가 난 나의 눈에 '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라는 책의 제목이 들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지은이 야마자키 마리. 직업은 만화가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열네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원래 교향악단의 비올라 연주가인 엄마가 가기로 한 것이지만 사정이 생겨 대신 가게 되었다. 첫 번째로 의문이 생겼던 부분이다. 어떻게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소녀를 머나먼 타국으로 홀로 여행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지은이의 어머니 또한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그녀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홀로 유럽 여행을 시작하는데 우연히 이탈리아 출신의 도예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어째서 아름다운 그림을 보러 왔는데 이탈리아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냐'며 꾸중 아닌 꾸중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즉시 네 엄마에게 전해라, 나에게 이메일을 쓰라고!' 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틀에박힌 사고방식이나 규율로 가득한 학교 생활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돼' 하고 쿨하게 이야기 한다. 그 후 그녀의 엄마는 이탈리아 도예가 할아버지와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 받은 후 그를 통해 마리씨를 이탈리아로 유학보내기로 결정한다. 두번째로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도대체 야마자키 마리씨의 엄마는 무슨 생각인거야?

 

그렇게 마리씨는 이탈리아 도예가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열일곱살 무렵부터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초기에만 잠시 신세를 졌을 뿐, 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춥고 험난한 유학 생활을 이어간다. 지금에야 성공한 만화가 중의 한 명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십여 년간은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10대에서 20대로 흘러가는 동안 그녀는 시인, 철학가, 화가 등이 모여 고대 로마시대의 철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는 아카데미에 나가면서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을 보며 예술과 철학에 깊게 매료되기 시작한다. 후에 그녀는 '테르마이 로마이'라는 만화를 썼는데, 이것은 고대 로마의 목욕탕 설계기사가 우연히 현대의 일본 목욕탕으로 타임 슬립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한다. 아마 유학시절 그녀가 배우고 느낀 로마의 문화가 그녀의 작품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실은 그녀의 약력을 읽었을 때만 해도 단지 운이 좋거나 여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나 예술을 지향했던 사람이겠거니 하고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유롭고 예술가적인 어머니의 성향이 그녀의 삶에 미친 영향은 크지만 단지 운이나 상황이 좋았을 것이라 단정지은 것은 분명한 오해였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유럽 여행을 떠난 것이나, 그렇게 떠난 곳에서 낯선 할아버지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 그것을 기회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비록 생활은 가난했지만 문화적으로는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모두 그녀가 스스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후반이 된 그녀는 10년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야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좌절도 잠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10년간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웠던 화가가 일본으로 돌아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화가가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한 이야기이다. 다행히도 일본에 돌아온 후에는 만화가로서도,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대한 전문가로서도 순조롭게 풀리게 되는데, 그 후 갑작스레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이탈리아 도예가 할아버지의 손자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열네살이나 어린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생략하기로 한다.

 

자칫 그녀가 겪은 일들만 보면 '꽤 고생을 했구나,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실패'라든지 '좌절'같은 것들에 오래 가두어 두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사전에 있는 어휘가 늘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정말이다. 가난한 유학시절 그녀가 흠뻑 취해있던 고대 로마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후 그녀가 만화가가 되었을 때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 준 자양분이 되었다. 그 뿐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문득 '지칠 대로 지친 나를 살리려고 하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하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들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어휘를 늘려가면 되고, 훗날에는 그것들을 '좋은 경험'이라고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된다고 말한다.

 

부족하고 아쉬운 인생일지라도 주눅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한마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며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같잖은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며 정작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홀했다. 부족하더라도, 온전치 못하더라도 그게 내가 살아온 길이며 내 자신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그제서야 나는 줄곧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지난 몇 년간의 기억들을 되돌아보았다. 어쩌면 대학원에 온 것 자체는 '실패'가 아니라 오늘의 좋은 친구를 만나라고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르는 채 하며 남들이 치켜세우는 것이 좋은 일이라 여겨 맞지 않는 옷에 자신을 우겨넣으려했던 나를 깨닫게 하려는 신의 뜻이 아닐까.

 

그날 새벽,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스타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다이어리 한 장에 빼곡하게 적어넣었다. 생각보다 쉽게 결론이 나왔다. 떠나자.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며 사는 것은 그만두자.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더이상 두려워하지말자. 마리 씨의 말대로 추락하고 구르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부딪혀도 마음을 다잡고 죽을 요량으로 해보면 어떻게든 된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내 안에 또 하나의 어휘가 생기는 것이고 '좋은 경험' 이라는 카테고리 하나가 늘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래, 더이상 시시하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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